장거리 출퇴근 단상

현재 나는 집에서 25km 떨어진 곳, 남편은 100km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다. 친정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 출산하면서부터 쭉 이렇게 지내고 있고, 나는 처음 분당에서 출퇴근하던 40km에 비하면 많이 가까워진 편이지만, 힘들 때도 있다.
여기 와서 아침운동하기가 애매해서  집에서만 간단히 운동을 해왔었는데, 요즘 체력이 부쩍 떨어진 걸 느끼고 다음주부터 다시 아침운동을 하기로 했다. 편안히 걸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허허롭다가 장거리 출퇴근으로 검색을 해보고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출퇴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고,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체력을 기를 수 있다. 언젠가는 집을 옮기든 직장을 옮기든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할 수 있겠지.

몸이 아프니까 해야하는 일은 안하고 자꾸 딴 생각만 하게 된다..


J와 보내는 특별한 순간들 단상

J는 아저씨와 동물을 좋아한다. 특히 배달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와 경비아저씨를 좋아하고, 내 학생 때 쓰던 청진기를 귀에 꼽고는 자기도 아저씨라고 한다. 아저씨를 멋진 어른 또는 능력자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J 덕분에 나와 내 주변의 세상과의 관계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경비아저씨를 마주치면 인사는 했지만, 그 이상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J를 통해 이 근처 아파트의 경비아저씨들이 퐁당퐁당으로 당직 근무를 한다는 사실과 상당수의 분들이 방에는 여러가지 맛 사탕들을 구비해놓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 동을 담당하시는 키가 크고 J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시는 멋진 경비아저씨는 일곱 살과 아홉 살의 손녀들을 보는 시간을 기다리시고, 아주 아름다운 단독 주택에 사신다는 사실, 그리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것을 즐거워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J에게 경비아저씨 근무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신 경비아저씨가 오실 때까지 멋쩍게 그 주변을 맴돌면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인사를 할 때마다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 아닌가 죄송스럽고 불편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인사하는 J를 귀찮아하시기보다는 예뻐해주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집은 복도식 아파트의 가장 끝에 있어서 네 군데의 옆집을 지나쳐서 집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집 옆옆집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고, 방충망 사이로만 본 적이 있었다. J가 어느샌가 고양이의 존재를 인식한 후부터는 그 집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졌다. 창문으로 고양이가 보일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집 문이 열려 있고, 방충망이 쳐져 있을 때는 집 안을 들여다보며 고양이가 어디 갔냐고 찾는 J 때문에 곤혹스럽곤 했다. 어제도 J가 고양이를 찾으려고 그 집 문 앞을 서성이는데 나는 너무 실례인 것 같아 멀찌감치 지나쳐서 J를 불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양이를 찾는 J를 눈여겨 보셨던 아주머니께서 J에게 인사를 건네시며 고양이와 직접 만나게 해주셨다. 그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J만은 특별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집에서 생활하는 portion이 적다보니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고, 인사도 제대로 나눈 적 없었는데, J를 통해 옆집에 계시는 분들과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문의 방충망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고양이는 마치 예전에 있었던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에서처럼 유연한 몸동작으로 멋지게 밖으로 등장하더니 곧장 J에게 다가와서 J의 손에 코를 가까이 대고, 누가 봐도 직관적으로 인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행동으로 반가움을 표현하고는 나를 경계하는 듯 못 이기듯이 다시 들어갔다.

J와 경비아저씨를 보면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가 떠오른다. 그가 주변의 세상과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기를.

J와 함께 보내는 시간, 특히 J와 단둘이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은 갈수록 특별하고 놀라운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언제까지 이렇게 J와 다정하게 지낼 수 있을까.  


연구 단상

연구계획서를 쓰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 하는 일도 재미있고 새롭게 만난 분들 중에 정말 좋으신 분들도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계속 지내려면 연구를 해야하는데, 연구가 정말 좋은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새로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니 너무나 막막하다.
며칠을 검색해보았지만 언제나 이미 지난 이슈이고 이미 끝난 이야기라서 더 이상 찾아낼 것이 없는 것만 같다.
이렇게 찾아보는 시간이 잠시 아깝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배운 것이 참 많아서 이런 과정도 감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뭔가를 찾아보고 공부할 때는 정신이 맑아지고 피곤하지도 않다. 이 느낌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여기까지 참고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막연하게라도 교수님들의 아이디어가 있는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했던 것은 지금 연구주제를 찾는 과정에 비하면 참 편했던 것 같다. 박사 과정에서 막연하고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을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암울하지는 않다.
나의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서 일주일을 더 보내보자.

날씨가 점점 좋아진다..

엉망진창. 다시 시작하기.

내 인생에 아기는 J로 족한 것 같다. 너무 사랑스럽고 나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지만, 내 시간이 없는 것, 나만큼 소중하지만 내 뜻 대로 안되는 것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다. J는 소동물들처럼 귀엽고 그만큼 활발하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거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내가 관리해야한다고 마음먹은 것들은 정말 잘 관리되어왔다. 그러나 관리해야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엉망이 되었다. 치아를 잘 관리하지 못했고, 차는 제때 수리를 받지 못해 더 많은 돈을 주고 수리를 받게 되었다. 평소에 그보다 작은 돈을 아끼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들이 허무하고 당연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다는 사실이 한심해서 주말간은 우울했는데, 이제 극복해야겠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을 그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니까! 차 수리를 받지 못해서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치아관리는 정말 아쉽긴 하지만 아직 J는 충치가 없다. 나는 이제부터 잘 관리하면 되고, J에게는 어릴 때부터 양치 교육을 잘 시켜주어야겠다. 한 곳에 집중하느라 놓치고 살았던 것들..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고 나에게 목소리를 내게 될 때가 온다. 내게 중요한 것들을 잘 점검하고 관리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내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 나를 되돌아볼 시간 등등.. 

J가 잘 때는 항상 J구름이 오고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구름을 만나면 구름을 타고 신나고 재미있는 곳에 가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엄마도 엄마 구름을 만나면.. 하고 엄마는 깊고 깊은 숲 속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고 말해주었다. 최근에 해변의 카프카 책을 잠깐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이야기한 것인데, 정말 그런 것을 원하고 있기도 하다.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J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일의 여유가 생길 때 쯤? 앞으로 5년 뒤면 J는 초등학교에 가겠지만, 나는 언제 일에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당장 2년 뒤일 수도 있고, 그 언젠가일 수도 있다. 남편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아침 내내 책을 읽고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실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시간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몸이 에너지로 넘치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얼른 자야겠다.


가치관과 진로 단상

고등학교 졸업 후 배우면서 살아온 기간이 벌써 6+5+2년이다. 힘들고 답답한 기간이었지만 얻은 것은 분명 있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지난 2년 동안 나의 가치관은 안락한 삶이라고 거의 확신했지만, 결국 나는 또 다시 바쁘고 힘든 길을 선택했다. 그 계기는 얼굴도 뵙지 못한 선배의 조언이지만,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이제 완전히 나에게 있다. 명예와 일에서의 성취욕 같은 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지금 내게 주어진 가족과 나를 위해 좀 더 시간을 쓰고 싶었는데, 내가 정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일까. 

이번에 정말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길들을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내게 권유해 주셨다. 그리고 결국은 "여자"로서의 삶, 커리어를 쌓는 것의 가치,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확실한 신념이 없이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여자로서의 삶이 인간, 또는 부모로서의 삶과 구분되는가.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의사는 너무 힘드니 행정고시에 붙어서 고급공무원이 되라고 하는 아빠에게 울면서 화를 냈던 것이 이번 일로 다시 기억났다고 하셨다. 15년 후, 상황은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었다. 아빠는 내가 계속 의학의 최전선에서 배우고 경력을 쌓기를 바라셨고, 나는 가족과 나의 인생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다고 울면서 호소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자가 일하기에 좋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길이다 라고 말할 때 조금의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게 안정적인 길을 권유해주신 분들은 당연히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신 분들이었다. 지금의 나는 전적으로 그 길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나와 같은 길을 걸어왔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분의 여자 선생님들은 내가 나를 위해 커리어를 더 쌓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족에게도 유익하다고 하셨고 내가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을 강력하게 권유해주셨다.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기 직전에, 나는 이제 나로 다시 돌아간다고 믿었고 내가 지금껏 바쁘게 살면서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았는데, 충격적이게도 그렇게 꼭 하고 싶은 일은 별로 없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지금 내가 해온 일들에 부어 온 에너지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소소한 일들이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혼자 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일을 하는 이상 그 정도의 여유까지는 얻을 수 없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너무 좋지만, 지금 같이 일을 하지 않으면 써먹을 기회도 없다. 결국은 아이와 집안을 정돈하는 것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도 밥 한 끼만 소홀히 먹거나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그게 나의 온 정신을 빼앗아 가려는 걸 일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인데, 아이에게 마음을 온전히 쏟기 시작하면 그게 아이와 나에게 과연 유익할까. 나는 솔직히 아이에게 몰입해서 훌륭한 육아를 해낼 자신이 없다. 결국 내가 해오던 일을 잘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유익할 수 있다는 선배 선생님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쁜 삶이 싫기는 하다. 하지만 연구는 이제 막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배우는 것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주중에는 바쁘지만 주말만큼은 온전히 가족과 보낼 수 있고, 오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내가 원하는 팟캐스트를 충분히 듣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신앙생활을 거의 못하고 있는 부분은 확실히 더 바뀌어야할 것 같다.

내게 조언해주신 분들의 말이 아직도 침대에 누우면 귓가를 맴돌고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바람이 불듯 마음이 흔들리지만,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게 될만큼 흔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지금의 내 선택에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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