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과 진로 단상

고등학교 졸업 후 배우면서 살아온 기간이 벌써 6+5+2년이다. 힘들고 답답한 기간이었지만 얻은 것은 분명 있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지난 2년 동안 나의 가치관은 안락한 삶이라고 거의 확신했지만, 결국 나는 또 다시 바쁘고 힘든 길을 선택했다. 그 계기는 얼굴도 뵙지 못한 선배의 조언이지만,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이제 완전히 나에게 있다. 명예와 일에서의 성취욕 같은 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지금 내게 주어진 가족과 나를 위해 좀 더 시간을 쓰고 싶었는데, 내가 정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일까. 

이번에 정말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길들을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내게 권유해 주셨다. 그리고 결국은 "여자"로서의 삶, 커리어를 쌓는 것의 가치,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확실한 신념이 없이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여자로서의 삶이 인간, 또는 부모로서의 삶과 구분되는가.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의사는 너무 힘드니 행정고시에 붙어서 고급공무원이 되라고 하는 아빠에게 울면서 화를 냈던 것이 이번 일로 다시 기억났다고 하셨다. 15년 후, 상황은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었다. 아빠는 내가 계속 의학의 최전선에서 배우고 경력을 쌓기를 바라셨고, 나는 가족과 나의 인생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다고 울면서 호소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자가 일하기에 좋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길이다 라고 말할 때 조금의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게 안정적인 길을 권유해주신 분들은 당연히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신 분들이었다. 지금의 나는 전적으로 그 길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나와 같은 길을 걸어왔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분의 여자 선생님들은 내가 나를 위해 커리어를 더 쌓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족에게도 유익하다고 하셨고 내가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을 강력하게 권유해주셨다.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기 직전에, 나는 이제 나로 다시 돌아간다고 믿었고 내가 지금껏 바쁘게 살면서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았는데, 충격적이게도 그렇게 꼭 하고 싶은 일은 별로 없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지금 내가 해온 일들에 부어 온 에너지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소소한 일들이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혼자 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일을 하는 이상 그 정도의 여유까지는 얻을 수 없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너무 좋지만, 지금 같이 일을 하지 않으면 써먹을 기회도 없다. 결국은 아이와 집안을 정돈하는 것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도 밥 한 끼만 소홀히 먹거나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그게 나의 온 정신을 빼앗아 가려는 걸 일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인데, 아이에게 마음을 온전히 쏟기 시작하면 그게 아이와 나에게 과연 유익할까. 나는 솔직히 아이에게 몰입해서 훌륭한 육아를 해낼 자신이 없다. 결국 내가 해오던 일을 잘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유익할 수 있다는 선배 선생님들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쁜 삶이 싫기는 하다. 하지만 연구는 이제 막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배우는 것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주중에는 바쁘지만 주말만큼은 온전히 가족과 보낼 수 있고, 오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내가 원하는 팟캐스트를 충분히 듣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신앙생활을 거의 못하고 있는 부분은 확실히 더 바뀌어야할 것 같다.

내게 조언해주신 분들의 말이 아직도 침대에 누우면 귓가를 맴돌고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바람이 불듯 마음이 흔들리지만,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게 될만큼 흔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지금의 내 선택에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 


재정비 단상

나를 재정비하려고 한다. 
내가 많이 우울해하니 남편이 육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첫 일 년 동안 우리집에 있는 동안은 내가 주도적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보니 남편과 함께 있을 때에도 모든 시간을 셋이 함께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제는 내가 피곤하고 힘들면 남편에게 부탁하고 쉴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비로소 몸이 거의 회복한 듯한 가벼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나니 할 일들이 생각났다. 일과 일에 더해 논문 심사 신청과 강의 준비, 앞으로 할 연구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볼 것도 있었고, 시간 있을 때 미리미리 해두어야한다는 다급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를 옥죄는 것은 상황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나를 채찍질하는 나 자신이이었다. 주말에는 육아로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에 주중에 남들보다 더 일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미리미리 준비하고 싶은 욕심으로 주중에 너무 쉴 틈이 없이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컨디션을 일에 투자하지 않은 채 정시 퇴근을 했고 처음으로 주유소 자동 세차 코너가 아직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운전한 지는 어느 덧 일 년이 넘었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늘 세차 코너가 닫혀 있었고, 굳이 시간을 내어 나와 세차하는 것이 아까워서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세차를 했다.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자. 극히 일부분만 가지고 내 임의로 규정한 남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말자. 정기적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내자.

나는 어디에 단상

재미로 한 성격 테스트에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결과를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고의 유연성은 부족하고 자기 생각은 확고한 타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근의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보다는 되어야 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나의 이상적인 모습에 비교해 답지를 골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꼭 들어맞지 않는 결과일 수 있다고해도, 갑자기 새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나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갈수록 나는 더더욱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췰 지를 의식하게 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자, 전문가이자, 튀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기대를 접고 가능한 한 '일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을 사회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간주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다듬고 바꾸어 나갈수록 내 고유의 모습은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판단하는 능력도 상실해가는 것 같다.

병원에서는 실수 없이 일을 해내고, 논문을 많이 써야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최대한 J를 보겠다는 의무이자권리에 사로잡힌다. 주중에는 엄마에게 J를 맡기고 있고 J가 너무 보고싶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조부모님이 아기를 보면서 확 늙어버리셨다던지, 아기가 느끼는 외로움이라든지-을 생각하며 최대한 엄마를 편하게 해주고 J에게 사랑을 주어야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전문의 2년차이자 학위를 준비하는 대학원 수료생으로서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으로 정말 벅차고 힘들 때도 있고, J가 아파서 심적으로의 괴로움이 병원에 있는 내내 나를 지배할 때도 있다. 남편이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J와 함께 보내는 주말이 훨씬 수월할 뿐만 아니라 행복하지만, 그만큼 남편은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원한다. 올해는 어째서인지 네 달이 넘게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아서 이제 열은 없는데도 다 나았나 싶으면 다시 목이 아프고 나아갈 쯤 다시 목이 아프다. 그러다보니 잠도 최근에는 많이 자고 있다. 그런 결과.. 나를 위한, 나를 다듬을 시간이 없다. 혼자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어본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오늘 오랜 만에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오늘은 혼자 카페에 가보려고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잠깐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한 두 시간을 낼 짬이 있었다. 그러나 오후부터 두통이 와서 결국 집으로 곧장 와서 타이레놀을 세 알 먹었다. 혼자 나가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사치로 느껴진다. 의사가 되고 더 배우는 것과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것. 두 가지 모두 내가 정말로 원해서 한 일이고 할 수 있어 감사한 일들인데 나의 능력이 너무나 부족하구나.. 일에 있어서도 부족한 것 투성이, J에게도 모자란 엄마인데 지금까지 온 것을 감사할 뿐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야단쳐 왔는데, 이제부터는 무사히 버텨내는 나를 더 사랑해 주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갖자.


요즘 힘든 걸까 단상

지난 주 월요일에 식중독으로 고생한 후 서서히 회복 중이다. 실신 직전까지 가서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당연히 음식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같이 먹은 분은 괜찮으신 건지 걱정했는데 나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많이 긴장하긴 했는데 정말 내 몸 상태가 안좋아서 나만 문제가 생긴 것일까,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근래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처해 있었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J가 유일하게 낯선 장소에서 자는 상황이 시댁에 가는 때인데, 잘 지내고 온 것 같은데도 다녀오면 꼭 하루 이상 심한 잠투정을 하곤 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몸은 다 느끼고 있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항상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지만,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안하게 살자.

익숙한 곳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시각을 선택하면 충분히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도 이상하게 패배감을 선택하게 되고 머무르는 것만이 최고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년에 갈 곳이 정해졌지만 가서 남기 위한 경쟁을 해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삶을 누리면서 적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경쟁 상황이 오면 이기고 싶어하고 안돌 것을 걱정하는 내가 한심하다. 그것도 당장 닥치지도 않았고 발생할지도 불확실한 일에 대해서..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올해 변화를 겪고 나에게 더 좋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J에게 내가 하는 말 단상

J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다. 
더 놀고 싶은데 잠이 쏟아져서 잠투정을 할 때 그를 안고 방 안을 걸을면서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더 놀자고 조용히 이야기해주면 울음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듣는다. 그리고 이내 자리에 눕혀달라고 하고는 바로 잠이 든다. 어제는 교회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장난감을 서로 차지하려고 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J를 안고 귀에 대고 "J는 여기에서 갖고 노는 장난감이 그렇게 중요한거야? 집에 더 좋은 장난감도 많잖아 여기 있는 건 잠깐 가지고 노는 것 뿐이야" 하고 이야기해주니 그 말을 듣는다. 별로 동의하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듣고 약간은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했다. 사람들이 좇아 간다고 해서 그게 결코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수 있는데 나도 무작정 남들의 방향을 따라가며 중요한 것을 놓치고 불필요한 소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은향이에게는 여기 있는 이런 것들, 이런 가치들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 " J에게 했던 말을 내게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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